부산 '산복도로' 도시재생, 결국 새로운 관광지의 탄생인가? by placemaker


산복도로.

부산 산복도로 지역은 한국전쟁 중 부산이 임시수도 역할을 할때 피난민들이 이주해 오면서 산중턱에 자리잡아 살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마을들을 일컽는다.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지금까지 운좋게(?) 재개발을 못하는 바람에 '달동네'의 이름을 달고 수십년을 버티고 왔다.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도시재생법이 발표가 되고 부산시가 2019년까지 1300억의 예산을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에 배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일수 있고, 도시의 가난한 지역에 충분한 예산이 배정되어 지역이 발전될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나고 기분좋은 일이다.

하지만 예산이 배정되고 실행이 되는 것만으로 이 지역이 제 기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이는 마치 신도시계획이 발표되었을때 집값이 들썩 거리던 때의 흥분감이랑 별로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지금 현재 많은 사업들은 일부 지자체와 정부기관이 중심으로 디자인과 안들이 발전되고 있으며 원주민들과 일반 시민들과의 스킨쉽이나 커뮤니케이션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다. 원주민들을 만나서 그 사람들을 이해 하려고 하는 것은 좋은 취지였으나, 그 모든 제안 사항을 물질적 인것으로 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에 그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기타소득이 좀 더 생기기를 바랄것이고, 동네에 특정 근린 시설들이 생겼으면 좋을 것이고, 또는 집을 무상내지 저가로 고쳐 주었으면 할 것이다. 아마 1300억원으로는 이 모든 토목 및 건축 프로젝트들은 어림도 없는 요구 사항일 것이다.



지금 감천동은 참 이쁘다. 물론 그 곳에 사는 사람들도 소박하고 이쁘다.

알록달록 벽들은 쿠바나 산토리니에서나 볼수 있을법한 밝은 색깔들로 물들어 있고 길에는 예술가들이 만든 팻말과 정비된 계단과 손잡이들등이 있어 이곳이 예전의 감천동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항상 그렇지만 이쁜 것만 가지고는 건축은 그 존재의 이유를 충분히 찾을수 없다. 도시 건축이란 도시의 사용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그 욕구들을 공유할수 있는 공간과 장소들을 제공해야한 하고 그 공간들이 '이쁘기' 까지 해야 그 가치를 인정 받는다.
지금의 감천동의 재생 사업은 art work 만들기, 생활 공간 개선사업 위주, 작은 일자리 찾아주기 사업등은 단편적으로 보면 아주 좋은 사업이다.

하지만 감천동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황과 맥락들을 보자면 이런 단기적 환경 개선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천동에서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라고 물어 보아야 한다. 공포를 느낀다면 무엇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지에 대해 이해햐야지 무조건 파출소부터 짓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라는 질문은 지금 사는 삶에 대해 뒤돌아 보게끔하며 가치 있는 것, 버려야 할것 그리고 보완해야 할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볼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동시에 도시 디자이너에게 공간을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다양한 전문가 그룹과 함께 일할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아래의 몇가지 논점은 지금의 도시재생 프로그램에서 덧붙여 생각해 볼 이슈들이다.

첫째, 감천동은 앞선 공공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이쁜길이나 최신 주민센터 만이 공공 인프라가 아니다. 무형의 인프라를 지역에 이식하거나 타지역과 연계해야 한다.
현재 낙후된 달동네에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주민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돌려서 말하면 본인의 동네를 부끄러워 한다는 말이다.
 인터뷰를 해 보면 주민들은 노후된 주거공간, 낙후된 교육시설, 절대 부족한 공공/녹지 공간, 그리고 접근 할수 없는 기성 문화 프로그램을 손꼽는다.

뉴스매체에 보면 이 지역을 한국의 '산토리니'리고 부르는데 동네벽 색이 화려한 것과 언덕에 위치한 동네를 대변해 줄지 모르지만 실제 산토리니가 왜 사랑받는지에 대한 생각도 관심도 없다. 정말 필요한 것은 '감천동형' 산토리니이다. 감천동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교육 그리고 문화적 기회를 더 많이 받을수 있는 공간이여야 한다. 감천동 밖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학교, 그들의 녹지공간, 그들의 문화 공간들을 부러워 해야 한다.

척박하고 소외되어 왔던 산복도로 사람들에게 산토리니 주민들 같은 연대감과 자긍심을 심어주어야 한다. 도시의 디자인이 발전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은 이루 말할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둘째, 동네 원주민이 거주할수 있는 디자인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울의 홍대 주변과 가로수길에서 보았다시피, 관광지형으로 발전된 지역은 결국은 지가와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들은 떠나 보낼수 밖에 없다. 홍대의 그 많던 인디와 아티스트들은 지금 그 곳에 없다. 가로수 길에 많던 작은 스튜디오나 카페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모건축가가 감천동에 반해서 그 곳 집을 사서 게스트 하우스로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나처럼 이제 올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면 이상한 것일까? 그 집에서 세들어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도시 재생의 좋은 사례로 꼽는 마산 창동의 현재 모습을 한번 돌아 보자. 원주민이 많이 살지 않는 마산 창동의 밤거리는 정말 가관이다. 얼마전에 몇몇 지인과 함께 밤 9시 조금 넘어서 술집을 찾았는데, 술집뿐 아니라 대부분의 상가는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재생이 끝난 이후 임대료 상승과 지역의 공공 인프라 (public service) 빈약으로 다수의 원주민들은 떠나고 말았다. 결국 남은 것은 불꺼진 빈 골목과 상가들. 아마 이 곳도 재생 작업이 막 끝났을 때에는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샴페인을 터트렸을 것이다. 원주민이 떠나서는 안된다. 다수의 외지인의 상업행위가 주체가 되면  결국 그 지역은 자생능력을 잃은 박제화된 도시, 지속가능이 불가능한 공간이 되고 만다. 원주민은 그 지역을 잘 알고 이용할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들을 보호하여야만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을 할수 있을 것이다.

세째, 마을의 관리자가 필요하다. 사용자에게 매뉴엘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어라
페라리도, 램브로기니 조차도 최고의 속력과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좋은 공간일수록 지속적인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일방적인 소비를 요구할때에는 정말 그 공간들은 흉물스럽고 더러운 페라기가 되고 만다.
최소의 비용으로 공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발적이고 일상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이는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관리자 역할을 하는 힘이 필요하다. 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이라는 깃발아래 강제로 이런 역할을 했다면 21세기에는 좀더 앞선 자립형 민주형 힘이 필요하다.

정부 주도형, 또는 연구소 주도형 디자인들은 도시의 실 사용자들과 피상적인 접촉을 할 가능성이 많다. 이로 인해 도시의 실제 사용자들과 다른 커뮤니티들 사이에 관계에대해 무지하거나 수박 겉핧기 식 이해를 할때가 많다. 계몽적 프리젠테이션이나 단순하게 요구사항을 조사하는 작업방식으로는 이 복잡한 관계들을 다룰수 없다. '관'이라는 단체는 복잡하면 그만두거나 대개 미래의 과제로 넘기고 만다. 지속적 관리가 없는 마을은 얼마지나지 않아 그 본래의 모습을 잃어 버리며 최악의 상황에는 슬럼(slum)이 되고 말기에 이 관리자의 문제는 많은 접촉과 논의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

사용자와 교류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일반적 대화, 워크샵, 토론, 브레인스토밍, 공동작업, 이벤트 조성 등등. 사용자들 집단, 즉 커뮤니티 그룹에 도시 디자이너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관리자의 형태와 구성이 찾아지기 시작하며 이 관리자의 형태가 대략적 매뉴얼을 통해 구성된다면 하나의 동네 협의체로 구성이 될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도시는 다양하고 건강한 커뮤니티들이 많을수록 풍요러워 지고 아름다워 진다.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 상황을 보면 너무나 빠른 속도로 체계없는 투자로 인해 또한번 도시의 모양을 바람직 하지 않은 쪽으로 움직일 것 같은 생각을 들게 만든다. 지금이라도 다양한 전문가 그룹들이 모여 지금까지 온 길을 뒤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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